오후가 되자 자유시간처럼 되어 버렸다.
일단은 제대로 보지도 못한 전시회를 구경하기로 했다. Duty Free 박람회이다. 면세점에 판매되는 모든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는것이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구경하는데 누군가 나를 부른다
"Hey ~ Hanna ! "
쥬드다. 검은색으로 잘 꾸며놓은 부쓰 한켠에 걸터앉아 날 보며 손짓한다. 쥬드 옆엔 다른 직원이 카탈로그를 펼친 채 열심히 제품 설명을 하고 있다.
"오늘은 한가한가봐여 ? " 쥬드가 묻는다
" 네 .일단 해야 할일은 다 끝난 상태예여. 내일 일찍 한국에 가니깐 그전까지 구경이나 실컨 하려고요 "
근데 모야 .. 본 전시 시간에 상담 풀로 차 있다더니 .그래서 아침 같이 먹은건데 ..한가하기 이를데 없는걸 ...
쥬드는 한달 후인 6월에 한국에 오기로 했다. 내 회사 근처가 좋을것 같다며 호텔은 삼성동에 있는 인터컨티넨탈로 예약해 달란다. 그러면서 자기가 한국에 가면 경복궁을 구경 시켜 달라고..
어떻게 경복궁을 다 알까 싶었는데 어제 밤에 한국에 대해 검색을 좀 했단다. 역시 쥬드는 회사일은 별 신경 쓰지 않는듯 했다. 아침에 함께 식사할때만 해도 몰랐는데 쥬드의 눈은 파란색이다. 머리는 짙은 금발에 끝부분만 곱슬거린다 ....
예전에 미국에서 누군가가 내 눈을 한참 바라보더니 " 어떻게 넌 눈동자가 이렇게 까맣지 ? "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에게 까만눈은 너무나 당연한건데 ... 파란눈은 어딘가 천진해 보이는 면이 있다.
쥬드가 있는 부스에서 쟈끄가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와는 달리 쟈끄의 부스는 정말 복잡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고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 쟈끄도 쉴새 없이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왔다갔다하며 협상을 하고 있다.
쟈끄의 머리는 갈색이군 ... 눈동자 색깔은 모였지 ? 꼭 양아치 같았는데 저렇게 일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 같아... 베이지색 바지에 소매를 걷은 흰색 셔츠가 잘 어울린다..
" 무슨 생각해여 ? "
이런 ... 언제부터 정신이 팔린거지 ... 쥬드가 혼자 얘기 한 꼴이 되어 버렸네 ..아침부터 지금까지 쥬드 앞에선 실수 연속이군..에효...
전시장을 나왔다. 덥다 .. 나오다가 어제 프라다 가방을 주신 과장님과 마주쳤다. 지금 한국 들어가신단다. 주머니에 있던 립스틱 한개를 드렸다. 사모님 갔다 드리라고 ... 애기거 모 사주고 싶었는데 주머니에 당장 있는거라곤 립스틱 한개가 다였다. 초라하지만 이거라도 드리는 수 밖에 ..
룸메이트 언니를 만나 이 밤이 깊도록 홍콩 관광을 하기로 했다. 처음엔 둘이 시작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 저기 관광하고 있는 다른 회사 한국 직원들하고 만나게 되서 무리를 지어 다니게 됐다. 저녁은 홍콩식 식당에 들어갔는데 내가 정말 싫어하는 탁한 국물에 고기 편육과 국수 그런 음식들이 서빙되었다. 안그래도 침사쵸이 거리에서 풍기는 그 이상한 냄새때문에 비위가 많이 상해 있던차에 아주 제대로 잘못된 음식이 나와버렸다.
음식만 빼고는 아주 좋았다. 봐도 봐도 홍콩의 야경은 멋졌고 신기한 물건은 많았고 값은 정말 쌌다.
언니가 조카 사준다고 들어간 상점에서 영어가 안 통한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해도 주인 아주머니는 홍콩말로 대꾸한다. 구찌 샵 마스터를 하고 있는 언니가 갑자기 아주머니한테 일어를 한다. 어라 .. 영어는 못알아듣던 상인들이 죄다 일어는 하네 ..신기하다 ..어딜가도 언니의 일어는 통하고 내 영어는 무용지물이었다. 일어를 배워야 겠다 하니 언니는 영어를 배우고 싶단다. 자긴 영어 한마디도 못한다고 . "샵마" 하는데는 일어면 OK란다. 대부분 일본 손님들이기 때문에
밤에 꽤 깊었다. 첫 비행기이기때문에 이쯤에서 아쉽지만 호텔로 들어가기로 했다. 언니가 술을 전혀 안마시는 내가 왠수같단다. 술만 마셔도 밤새겠는데 맨정신엔 못 그러겠다고
난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언니 방에 가서 우리 룸서비스로 맛있는거 시켜 먹자. 나 배고파 . 냄새나는 국수말고 음식 다운거 먹고 싶어 . 연어 샌드위치, 까페라떼 이런거 먹고 싶어 "
" 지금 11시가 다 되는데 룸서비스 하려나 ? 그럼 빨리 들어가자 !"
조용한 호텔 복도를 둘이서 팔짱끼고 깔깔 거리며 걷는데 갑자기 내 머리가 툭 풀어졌다.
"어머머..."
계속 입고 있던 옷들이 정장이라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는데 옆머리를 올려서 꽂은 삔이 툭 빠진것 ... 그 바람에 머리가 바보가 됐다. 뒤는 묶여 있고 옆은 다 빠지고 .. 둘이서 삔을 찾기시작했다.
"모야 .. 어디로 튕겨 나간거야 .. "
머리를 한손으로 움켜쥐고 바닥을 샅샅히 뒤지고 있는데 언니가 발로 나를 막 친다
"야 ~ 야 ~ 야 ~"
"왜 ~~ 빨리 삔 좀 찾아줘 ~"
" 일어나봐 ~~ 저기 서있는 남자 너 찾아 온 사람 아니야 ? "
쟈끄가 서있다. 벽에 기대서 ... 언제부터 서 있던거지 ?
"Hi ~"
한참을 서 있었는 듯 잠긴 목소리다.
우선은 옆에서 저 남자 진짜 멋있다며 난리를 치고 있는 언니부터 소개해 주려고 했다.
" 어 .. 안녕. 이 언니는 .."
" 알아. 너 룸메이트쟎아 .. 어제 날 버리고 가게 만든 이유 중 한사람 "
내가 사람만 소개하려 하면 번번히 끊어버리는 군..쳇 !
언니는 내 팔을 꼭 끼고 서서 " 모라는 거야 ? 왜 온거래 ? 지금 무슨 얘기 한거야 ? " 쟈끄를 보며 미소 짓느라 바쁘다. 언니가 일어만 하는게 정말 다행인 순간이다.
"언니... 제품 때문에 모 할얘기가 있나봐. 잠깐만 로비가서 얘기하고 다시 올라올께 ..언니 먼저 씻고 있어 "
"어 ~ 그래 ~~ 천천히 와 ...아휴 ~ 지지배 ~ 좋겠다~ 저렇게 멋있는데 왜 여태 얘기 한마디 안해줬데 ~~"
" 무슨 일이야 ? "
" 아까 전시장에서 이따 간다고 했쟎아 "..... 그래 이따 간다고 하긴 했다.
" 나가자 !"
" 이 시간에 어딜 나가 ..게다가 나 지금 너무 배가 고프다구 ... 난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생각 안나 . 그래서 지금 내 머리속은 빨리 방에 가서 .................. 근데 왜 그렇게 쳐다 보는 거지 ? "
" 너 예쁘다 "
" 뭐 ? "
" 너 머리 내리니깐 더 예쁘다 "
아 ... 맞다 ... 내 머리 ... 삔 찾고 있었는데 ... 그나마 묶여 있던 머리끈도 빠져버렸네. 다 어디로 도망 간거야 ... 아 ... 오늘은 하루가 왜이리 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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